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
Victory Over Self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디모데전서 6:12).
성도란 누구입니까?
성령으로 거듭난 (중생)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 (디모데전서 6:11) 라고 합니다. 구약에서는 '선지자'나 '선견자'를 일컫던 용어입니다.
사도행전 11:26에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그리스도를 추종하는 자'란 의미로 나타났읍니다. 갈라디아서 5:24에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라고 하였읍니다. 에베소서 2:15에서는 중생한 사람의 본질적인 면을 강조하여 '새 사람'이라고 하였읍니다. 이는 중생 이전의 사람을 '옛 사람'이라고 표현한데 대하여 반대 개념으로 사용되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새 사람이 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교훈합니다. 즉 새로운 신분을 갖게 된 우리 성도들은 십자가 체험 이전의 사람이 즐기던 것들을 떠나고 오히려 그것들과 싸우도록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자신의 정욕과 싸워야 합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디모데전서 6:9).
인간의 본성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후에도 죽지 않고 남아 따라다니는 것은 '정욕'입니다 (9절). 중생 이전에는 완전히 이 정욕이 우리를 지배하였읍니다. 로마서 1:24에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라고 밝힙니다.
로마서 1:26, 27에도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고 하셨읍니다.
또 로마서 1:28, 29에도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 (정욕) 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 하는 자요..."라고 밝힙니다.
이같이 중생 이전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정욕의 노예로 살도록 내어버려 두셨읍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를 구속하셨읍니다. 갈라디아서 5:24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선언합니다. 과연 우리는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았읍니까?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사람이 된 후로는 옛 사람의 기질이 남아 있는 현재의 자신과 부단히 투쟁하였읍니다. 고린도전서 9:26, 27에 보면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 하였읍니다.
우리는 육신을 쳐서 정욕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신령한 노력과 수고를 날마다 계속하여야만 합니다. 다윗도 삼손도 일순간의 실수로 정욕의 시험에 빠져 부끄러움을 남기지 않았읍니까?
돈을 사랑하는 자신과싸워야 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디모데전서 6:10).
우리의 타락한 본성 중에 또 하나의 강력한 근성은 '돈을 사랑함 (10절)이라고 밝힙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부하려 하는' (9절) 본성이 도사리고 있읍니다. 이는 재물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타락된 우리 자신을 폭로하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6:24에서 예수께서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이는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도록 교훈하심입니다 (디모데전서 6:17, 18).
그러나 우리 생활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고 있읍니까? 아니면 순간 순간 물질에 노예가 되어서 우리의 신분도 망각하고, 주일도 범하고, 주의 몸 된 교회 봉사도 못하지는 않습니까?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사람은 돈에 대한 끝없는 욕심과 부단히 싸워야 할 것을 교훈합니다. 그러면, 돈을 사랑함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살펴보겠읍니다.
1. 시험을 불러들이는 행위입니다. 어떤 시험은 마귀의 올무가 되어서 우리의 영적 순결성을 짓밟아 버립니다. 성도의 고상한 인격과 행위를 빼앗아 갑니다. 그리하여 옛 사람, 즉 중생 이전의 사람과 아무런 구별이 없게 됩니다. 마치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목욕 후에 다시 더러운 곳에 눕는 것과 같습니다. (베드로후서 2:22)
2.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 새 사람은 마땅히 선과 의와 착함의 뿌리가 되어야 할 터인데, 도리어 옛 사람과 같이 악의 뿌리가 된다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겠읍니까? 나로 인하여 내 가정, 내 직장, 내 이웃에서 악이 증가된다면 십자가 이전의 사람이지 십자가 이후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읍니까?
3. 많은 조심을 불러들이게 됩니다. 돈을 사랑하면 심령의 거룩한 평강과 기쁨이 사라집니다. 돈에서 오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27) 이것은 일시적일 뿐만 아니라 조건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돈이 떠날 때는 큰 피해를 남깁니다.
잠언 21:6에는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 다니는 안개니라"고 하셨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돈의 노예, 재물의 노예가 결코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잠언 30:8, 9)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정욕과 싸우고, 돈을 사랑하는 자신과 싸우는 것은 '선한 싸움'입니다. (디모데전서 6:12)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선한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학습 문제
1. 우리의 신분은 어떻게 표현됩니까?
(답)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2. 우리 자신을 이기려면 어떤 본성과 싸워야 합니까?
(답) 정욕과 돈을 사랑하는 본성과 싸워야 합니다.



